"사람을 만나야 해요. 동호회나 모임에 많이 나가보세요.""연애를 쉬지 않고 하는 걸 추천해요."인터넷에 나온 애정결핍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한경호 원장(탑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며 "결핍된 애정을 충족하려고 대인관계에 무리한 에너지를 쏟다 보면,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급한 관계는 때로 더 큰 상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어 한경호 원장은 애정결핍에 대해 다각도로 설명했다. 다음은 한 원장의 자세한 설명이다.
애정결핍, 진단명은 아냐정신의학에서는 '애정'이란 표현 대신 '애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애착이란 사람 사이에서 정서적 유대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최초의 애착은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 시작되죠. 누구든 애착대상과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상호작용하려는 욕구를 지닙니다. 이러한 애착 형성과정이 잘 이뤄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정결핍 즉, 애착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애정결핍은 부모 혹은 주양육자와의 애착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정서적 안정감이 부족한 채 성인이 됐을 때, 대인관계(특히 연인)에서 나타나는 부적응 현상입니다. 타인에게 지나친 관심이나 인정 혹은 애정을 갈구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애착과 관련된 공식적인 진단 3가지1. 반응성 애착장애 (소아에서만 가능)주 양육자와의 애착 형성 실패로 인해 부모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회피, 무관심, 위축 등의 모습을 보여 마치 자폐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2. 탈억제성 사회적 유대감 장애 (소아에서만 가능)반응성 애착장애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애착형성의 부재로 나타나는 장애입니다. '비선택적 사회 친화적 행동'이 특징인데요. 이는 낯선 사람에게 무분별하게 친밀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3. 분리불안장애 (성인과 소아 모두에서 진단 가능)애착대상(주로 어머니)과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무서워합니다. 애착대상을 잃어버리거나 그 대상에게 해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비합리적인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애착대상과 잠시라도 공간적으로 분리되기 어려워 학교와 직장 등에서의 일상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애정결핍이 생기는 이유 3가지자녀에게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의 불안정한 양육방식'이 애정결핍의 주된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타고난 기질'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애정결핍이 생길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기질적으로 활동 수준은 높은데, 새로운 자극과 환경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이며, 생활리듬이 불규칙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질을 가진 아이의 부모라면, 건강한 양육을 위해 아이의 욕구와 의사표현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며 아이를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이로 인해 아이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열정과 기술이 필요하게 되죠. 환경 요인은 전쟁, 자연재해와 같은 특수 상황이므로, 실제 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결국 부모가 애정결핍 발생에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찾는 데 너무 큰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를 찾는다고 한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 대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착 vs 무관심...애정결핍 의심할 만한 증상 2가지1. 매달리는 타입가장 흔한 애정결핍 타입입니다. 타인, 특히 연인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면 매달리는 타입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정 표현을 집요하게 요구함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무리하게 늘리려고 함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거에 들어감 △휴대폰 수시 확인 △상대방의 기존 대인관계를 축소하거나 단절하기를 요구함 △이별 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회를 갈구해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괴롭고 불안정해지는 분리불안 증상이 있습니다.하지만 과한 집착은 갈등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관계가 쉽게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대인관계의 변화가 잦고 불안정한 특징을 보입니다. 또한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고, 감정기복이 큰 편입니다. 이 밖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며,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2. 회피하는 타입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큰 나머지,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나빠졌을 때 받는 고통이 극심해서 마치 자신이 파괴될 거라는 극한의 두려움이 깔린 타입입니다. 회피하는 타입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 상대방이 정서적으로 가까이 다가오면 거리를 두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관계 형성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기 쉽습니다. 매달리는 타입에 비해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애정결핍을 인지하기 어렵죠.
 애정결핍 ≒ 불안정한 애착정신의학계에서는 발달심리학자인 메리 애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애착이론을 가장 널리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애착에는 '안정적인 애착'과 '불안정한 애착'이 있는데요. 안정적인 애착은 주양육자와 아이 사이에 애착이 잘 형성됐을 때를 말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불안정 애착이라고 합니다.◇ 불안정 애착 유형 3가지1. 회피적 애착 = 회피하는 타입2. 양가적 애착 = 매달리는 타입3. 와해형 애착와해형 애착은 방임과 학대 또는 감정적 지지가 거의 없는 부모에게서 자랐을 때 주로 나타납니다. 특징은 회피적 애착의 불안과 양가적 애착의 집착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매우 불안정하며, 때로는 공격적이고 기괴한 언행을 보이기도 합니다.아이에게 나타나는 불안정 애착 형태를 성인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성인의 불안정 애착 형태를 다룬 연구나 공인된 학설은 부족한 편입니다. 제 경험상, 아동과 비슷하게 성인의 애정결핍도 피하는 타입(회피적 애착)과 매달리는 타입(양가적 애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동의 애정결핍 vs 성인의 애정결핍애정결핍이 있는 아동은 언어나 사회성, 신체적 발달이 늦고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써 지적장애나 자폐 같은 발달장애처럼 보이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에 반해, 성인은 아동처럼 "나는 애정결핍이에요"라고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외양적, 행동적 특징을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이 그러하듯 겉으로 봐서는 쉽게 알 수 없죠.이처럼 성인의 애정결핍은 아동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애정결핍은 열등감, 분노, 불안, 불면, 우울, 공황, 강박, 중독, 부적응 등 사람마다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를 감추려는 방어적 태도도 강하기 때문입니다.다만 소수의 성인은 내적인 공허감을 감추고,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나치게 극적인 말투와 제스처를 사용하거나 화려한 옷차림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애정결핍, 자가 치료와 정신과 치료애정결핍을 치료하지 않으면 우울, 불안, 불면, 공황, 성격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만성화되기 쉽습니다. 애정결핍 치료가 중요한 이유입니다.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애정결핍 치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 결핍된 애정 채우기 △반려동물 키우기 △종교 활동 △명상 △자기 자신과 치료적 대화 나누기 같은 자가 치료법입니다. 여기서 치료적 대화란, 애정을 갈구하고 떼쓰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쓰면서 위로와 지지, 칭찬을 마음껏 건네는 것입니다.정신과에서 하는 애정결핍 치료는 크게 두 층위로 이뤄집니다.1. 기본공감과 지지 + 애정결핍으로 인해 일어난 부가적인 심리상태 평가와 해결 + 자가 치료가 지속적이고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동기부여, 조언, 모니터링2. 안정적인 애착을 위한 대상으로서 역할치료자가 애착관계의 대상이 되어, 애정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관계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과 더 나아가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 돕습니다.
애정결핍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말씀모든 사람은 그 정도만 다를 뿐 애정결핍을 겪고 있습니다. 완벽한 부모 혹은 유전자, 환경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입니다. 고로 애정결핍을 겪고 있다 해서 자책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이를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주위를 보면, 애정결핍 치료 과정에서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와 좋은 치료적 관계를 유지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자나 진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다른 치료자를 만나면 되니까요. 치료의 큰 틀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진료방식은 매우 다양해집니다. 처음부터 편안하고 신뢰감을 주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정신과 의사 역시 그럴 수 있는 것이죠. 결국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과 잘 맞는 치료자를 찾을 것입니다. 또한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치료 과정을 통해, 애정결핍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한경호 원장 (탑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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